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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형14

일기는 소중해 아는 누나의 권유로 시작한 일기쓰기.지난 3년간 꾸준히 일기를 써왔다.멋들어지게좀 살아보고 싶었나보다.더럽게도 많이 썼다. 세삼 일기의 효과가 대단하다라는것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삶을 기록한다는 그 작은 행위 하나가바닥 딲듯 세상을 딲고 다녔던 내 인생을 바꿔 주었다.내 삶을 돌아볼줄 아는 자세를 키워주었다.남들 삶을 볼수 있는 눈을 띄어주었다.그래서 항상 남들에게 일기를 쓰길 권유하고 있다.생각을 글로서 표현해내고글로서 표현된것들을현실로 끄집어내는 새로운 페러다임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을 하기 위한 사람인지 무엇을 할때 가장 아름다워지는 존재인지 실질적인 고민이 시작됬으며실질적인 노력이 더해졌으며그 과정에서 깨어지는 내 모습과회복되는 내 모습들이 섞여황윤형을 이루어 갔다. 수 많은 장.. 2015. 8. 23.
다시 바라본 나 참 희한하다. 나는 완전 부족한 사람인데 공군 부사관이라는 타이틀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평가받고, 또 좋은 대우를 받게된다. 물론 부대 내에선 짬찌 하사지만; 가족들부터 지인들, 사회의 시선은 전혀 다른 듯 하다. 부대를 나서서 가는 곳마다 축복들이 쏟아지는것을 볼때에 과연 내가 그런 축복을 받을 만한 사람인가. 지금의 행복을 누릴 만한 충분한 댓가를 지불하였는가. 왠지 이 풍족함을 공짜로 누리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꿍 하지만, 암튼, 나는 내가 속한 이 공군이라는 단체가 너무나 좋다! 그리고 이 단체에서 부사관이라는 직책을 맡게된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어떤 과거를 살아왔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것은 내 옆에 나를 도와주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과 나의 존.. 2014. 9. 27.
엄마의 기일 얼마전 성남 집을 완전히 처분 하면서 우연히 엄마가 쓴 편지를 발견했다. 그렇게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내 임관식때의 사진이 그 편지와 함께 서랍에 담겨져 있었다. 정확히 편지가 아니라 기도문이었다. 그러나 내게만큼은 편지였다. 동생을 그렇게나 싫어했던 엄마였는데 동생을 끝까지 부탁한다는 내용의 글. 나는 오늘 아침까지 동생과 앞으로 상종 하지 말자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아이가 치는 모든 사고들을 내가 수습해야 된다는 현실이 싫었다. 그 아이 한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했는지 거기에 화가났고 그것을 모르는 동생의 태도를 가만 보고 있노라면 끌어오르는 화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심하게 지쳐 가고 있었다. 그래서 혼나봐라 라는 심정으로 면회도 안가줬고 편.. 2014. 9. 17.
갈굼에 대한 건아의 자세 인생이 아름답다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이 세상엔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내 눈에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들에게 이 글을 받친다. 우선 갈굼이란 무엇인가. 나는 갈굼을 이렇게 정의하는 바이다. '나의 심장에서 나오는 적혈구를 비하하는 행위'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못한 세상인것 같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적극적으로 표현 해야만 하는곳이 이 세상이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등등, 나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똑바로 전달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볼수 있는데, 그 이유는 나라는 존재는 당신이 뭐라고 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쓰레기같은 존재가 아니라 내 자신은 소중하며, 나는 내가 부끄럽지 않다는것을 증명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추행하는 사람조차 정당방위로.. 2014. 9. 17.
우리 엄마 엄마는 참 이해 할 수 없는 행동들을 많이 했다. 돈을 그렇게 벌어오라 벌어오라 때리면서까지 집을 내쫒아내고서는 벌어온 돈 단 한푼도 쓰지도 않고 모아 두었던 우리 엄마 나를 죽도록 때리고 난 후에 내가 잔뜩 겁먹고 울며 잠에 들때면 멍든 부위에 연고를 발라주고 또 주물러줬던 우리 엄마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 왔는데도 밥 챙겨먹었냐며 물었던 우리 엄마 그렇게 미워했던 엄마였는데 엄마가 거짓말을 못한다라는 사실을 알게 됬을때 이젠 더 이상 미워할수 없는 엄마가 되버렸다. 엄마가 거짓말을 못한다라는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조금만 더 친하게 지냈을텐데 엄마는 항상 나를 등신이라고 불렀는데 왜 그 날 내 계급장을 달아주며 혼잣말로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했을까. 스스로 엄마 될 자격이 없다고 말해도 늦지 .. 2014. 9. 11.
chapter 4-2 : 패잔병 다윗 chapter 3 : 패잔병 다윗 멀리 떨어져 있던 내게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주며 캐어를 해주었던 구동찬 형님께 오늘도 전화가 왔습니다. 근데 평소듣던 목소리 톤이 아닌 매우 힘빠진 목소리가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어 히히 윤형아.." "어 네 ! 형!" "아 다름이 아니고 너한테 먼저 말하는게 좋을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서" "아.. 말씀하세요 먼데요?" "하.. 나 선교단체 나오게 됬어..지금 나 힘이 너무 안나와..오늘 하루종일 그냥 가만히 누워있었어.. 너무 슬프고.. 기도좀 부탁하려구 전화한거야..히히.." "안좋게 나오신거에요?" "음..그치 히히" 항상 힘이 넘치고 확신에 가득찬 형님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에 당황했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나는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 2014. 9. 9.
chapter 4-1 : 다윗의 등장 -chapter 3 : 다윗의 등장 그러던 어느날 주말에 시간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틈틈히 성남에 올라가기도 했고 그동안 통화로만 뵙던 구동찬 형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많은 대화들을 했습니다. 구동찬 형님은 가만히 들어주었고 조용히 위로해 주었습니다. 희망을 가지라며 몇개월간 들어본적 없는 말들을 저에게 많이 해주셨습니다. 저는 뭔가 충전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 뒤로 구동찬 형님과 많은 대화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구동찬 형님과는 고등학교 3학년때부터 인연이 있었습니다. 구동찬 형님은 라이즈업 무브먼트 선교단체의 선교사님인 동시에 간사님이셨습니다. 양영 디지털 고등학교 지정 학원사역자셨고 많이 만난 적은 없지만 왠지 친근한 그런 형님이셨습니다. 교류는 많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띄엄띄엄 있었던.. 2014. 9. 9.
chapter 3 : 자대생활 -chapter 3 : 자대생활 군 입대 전에 겪었던 것들은 새발의 피였습니다. 임관 후에 훨씬 더 큰 고통의 날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생을 캐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가 유일했는데 이제 없었습니다. 저는 교육중에 있었기때문에 동생을 도저히 캐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동생의 방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저는 가진것들을 다 잃었습니다. 22살이 잃어봤자 얼마나 잃나 싶지만 가정을 책임지고자 부사관에 왔는데 임관 하고 군인으로서 첫 엄무를 시작해보니 가정은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진 뒤였습니다. 동역자들은 더 이상 제 옆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동생은 감옥에 갔고 내가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돌아가셨고, 성남 집에서 4천만원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체 저는 길바닥으로 쫒겨났습니다. 엄.. 2014. 9. 9.
chapter 2 : 신호 chapter 2 : 신호 저는 부사관 학교에서 여전히 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추석 전날이 되었습니다. 동기들은 모두 가족들을 만나러 갔고 저는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배정받은 숙소로 짐들을 가지고 갔고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 위치가 가까운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교회를 찾아 나섰고 15분 거리에 교회가 있다는것을 발견했습니다. 꾀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이번 추석기간이 너무 기대 됬습니다. 교회를 찾아가서 평소 기도하던 방에 들어가 기도를 드렸고 나오던 길에 슈퍼에 들려 간식거리를 샀습니다. 어느덧 제법 날이 깜깜해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추석때문인지 친척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바로 저에게 부사관을 소개해준 동생이었습니다. 동생이었지만 빠른이라 서로 반말을 합니다. 그정도로 또.. 2014. 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