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오늘은 내 솔직한 심정을 토로해보겠다.
나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자라왔다.
부모님은 매일 싸우시다 결국 내가 6살떄 해어지셨다.
그 뒤로 나는 엄마와 같이 살아왔다.
엄마의 인생엔 고통들이 너무 많았다.
술과 담배는 엄마의 고통스런 인생을 유일하게 버텨나가게 해주었던 도구였나보다.
어려웠던 가정환경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엔 소심하다가도 화가나면 이상하게 마구 폭발하는
분노를 머금고 있는 아이였고,
사람을 전혀 믿지 못하고 고집이 황소같은 불같은 아이였다.
엄마는 나를 많이 때렸다.
화풀이를 많이 하셨다.
엄마는 내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우리 두 형제를 키워내려는 엄마의 발버둘을 보았기때문에
엄마가 내게 행해왔던 안좋은 모습들이 단순히 답답함에서 나온 화풀이였음을 알았기에
나는 엄마를 싫어할수가 없었다.
엄마에겐 친구도 없었고 의지할수있는 사람도 고작 교회 목사님이 전부였다.
그런 엄마에게 친구가 되주고 싶었고 그냥 옆에 있어주고 싶어했다.
스무살때 교회에 처음 나가게 되었다.
교회에 나가면서부터 내 인생의 많은 부분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것도 많아지고 좀더 자유로워지 느낌이랄까.
그렇게 희망이 생기던 찰나,
엄마의 건강이 갑자기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 전에도 아파서 병원에 몇번 실려갔었지만
철이 없어 그렇게 심각한줄 몰랏었다.
엄마의 상태가 심각하다는것을 왜 이렇게 늦게 알았는지..
나의 철 없음에 많은 후회를 했었다.
그리고 동생이 갑자기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폭주를 뛰고 친구들을 때리고 물건을 훔치는 둥의 사고들,
결국에야 교통사고까지 당해 머리가 함몰되고 온 몸이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했다.
기적적으로 치료가 되었지만
여전히 방황을 그치지 못했고 감옥 생활이 점점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든 일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부터 교회를 많이 가게 됬다.
내게도 희망을 주신 하나님께
엄마에게도 동생에게도 희망을 주셨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많이 했다.
친구들이 불러도 모임에 가지 않았다.
너무 힘들어서
교회에 틀어박혀서 생활했다.
어느 날
엄마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희망없이 살아왔던 지난 날이었는데
이젠 엄마에게 희망있는 삶이 어떤것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20년 평생 처음으로
무엇을 해볼지 인생에 대한 첫 고민을 하게 됬다.
그리고 선택한것은 보컬이었다.
교회에 처음 나가서 본것이 바로 앞에서 찬양하는 사람들이었기때문이었다.
그들이 발산해내는 에너지가 너무 커다래서
나도 그런 에너지를 엄마와 동생에게 전달해주고 싶었다.
보컬을 배우는 내내 너무 즐거웠다.
아 내가 이렇게 소리를 지를수 있다는것이 너무 즐거웠고
내 마음을 표현해내는것 같아서 행복했다.
발성 하나하나가 어무 재밌었고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좋았다.
그러나 음악을 계속 하기에는 집안 사정이 많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것처럼 엄마가 아프고 동생이 방황하기 시작한것이다.
그리고 다가온 군 복무..
결국 음악을 멈추고
다시 인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사보다는 월급을 받을수있는 부사관으로 군복무를 결정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아픈 엄마를 위해 군인의 길을 선택했다.
부사관 훈련은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힘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중도 포기를 했고 또 짤리기도 했다.
조교들은 한명이라도 더 떨어뜨리려 악을 질러대는 상황에서
나는 엄마를 생각하며 훈련을 버텨냈고
언젠가 회복될 우리 가정을 바라보며 힘을 내서 하나하나 훈련을 통과해 나갔다.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임관에 성공했고 임관식에 엄마가 왔을때
얼마나 기뻣는지 모른다.
너무 기뻣다. 동생도 왓다면 더 행복했을텐데..
암튼 그렇게 나의 군생활이 시작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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