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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일기장) 흑역사../1층 (2012~2015)

chapter 3 : 자대생활

by 글쓴이, 갈렙 2014. 9. 9.

-chapter 3 : 자대생활

군 입대 전에 겪었던 것들은 새발의 피였습니다. 임관 후에 훨씬 더 큰 고통의 날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생을 캐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가 유일했는데 이제 없었습니다. 저는 교육중에 있었기때문에 동생을 도저히 캐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동생의 방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저는 가진것들을 다 잃었습니다. 22살이 잃어봤자 얼마나 잃나 싶지만
가정을 책임지고자 부사관에 왔는데 임관 하고 군인으로서 첫 엄무를 시작해보니 가정은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진 뒤였습니다. 동역자들은 더 이상 제 옆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동생은 감옥에 갔고 내가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돌아가셨고, 성남 집에서 4천만원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체 저는 길바닥으로 쫒겨났습니다.

 

엄마가 남겨주신 유산은 동생이 사고친것을 허무는데 모두 사라졌고,  친구들은 저를 떠나갔습니다. 낯선땅에 홀로 던져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잘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퇴근 하고서는 빈 집을 찾아서 몰래 들어가 자야했고 이불이 없어 맨 바닥에서 자고 다시 일어나서 출근하며 살았습니다.  

업무는 당연히 손에 안잡혔습니다. 상관이나 병사들에게조차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갖은 무시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들을 신경쓸 수 없었습니다. 머리가 멍했고 내가 왜 군생활을 해야되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지 못해 그저 모든것들이 하기 싫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끄심을 받고 당당하게 들어왔는데 펼쳐지는 상황들에서 하나님께 굉장히 큰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내 인생에 그렇게 좌절해본적이 없었고 절망에 빠져본 적이 없습니다. 동생은 감옥에서 나왔지만 또 다시 사고를 쳐서 감옥에 들어갔고 동생이 사고친것을 제가 물어주지 않는 이상 법적인 공판을 받아야 했기때문에 두려움에 어머니의 유산을 모두 동생의 벌금을 갚는데 사용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동생의 방황은 더 심해질뿐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유산을 사용했다는 그 선택은 한동안 저를 굉장히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저에게 표현조차 할수 없는 큰 환란이었고 그 여파는 많이 사라졌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제 일어나는 일들은 클래스가 달랐습니다. 정신적인 한계를 이미 넘어선 극한의 상황이 주어지니 그동안 포장되있던 제 본연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도 안나갔습니다. 도데체 하나님께서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레 이런 엄벌을 주시는것일까. 내게 기적을 배푸시고 부사관에 들여보낸 존재가 하나님인데 이건 도데체 뭔 상황인가 싶었고 하나님이 싫어졌고 괜한 반항이 나왔습니다.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이미 밑바닥이 어딘지 알기에 내 비참한 모습을 볼때쯤이면 다시 회개하고 그러나 또 원망하고 이걸 미치도록 반복했습니다. 선교단체에서 그렇게 응답하기 좋아하시던 분이 어떻게 하나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선교단체에서 2년간 느껴왔던 하나님께 배신감이 들고 원망하는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우울증이 찾아왔고 사람을 피하게 됬습니다. 갑자기 소심해지기 시작했고 사고방식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쉽게 화를 내기 시작했고 창피해서 들어낼수는 없지만 정신도 망가지고 마음도 망가지고 영혼도 망가지고 몸도 망가지고 절망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믿음 하나 붙잡고 굉장하게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찾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선교단체에서 배웠던 것들이 실현이 되지 않았습니다. 절망적이었고 은혜란 없었습니다. 그래도 억지로 믿었습니다. 믿어야만 했고 다른 길은 없다는것을 알고 있었기때문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