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한다.
사랑하면 행동이 나온다고
사랑해서 죽어가는 이들을 향해 복음을 전했고,
기도모임을 만들었었고
참 여러가지들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속엔 '공허함'이란게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을 긴 시간동안 눈치체지 못하다가
군대에 와서 그것이 터지게 되었다.
인생이 내 뜻데로 안되기 시작하면서
어느세 화살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내 자신을 발견하였고
그렇게 복음 전하고, 열심을 다한 내게 뭐하는 짓이냐며
보상심리에 빠져 한동안 시험에 들기도 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가장 큰 절망이 찾아왔을때,
비로소 무릎 꿇고 회개하게 되었다.
전도가 나쁜것은 아니다.
기도모임을 만들고 주님을 증거하는것은
절대 나쁜것은 아니다.
그저 사역을 감당해내기 전, 거쳐야 될 단계가 있다.
하지만 그것에 취해 하나님을 신경쓰지 않을때가 분명 많다.
내게 주신 가족들,
꿈들, 그 소중한것들을 그동안
'내려놓는다'라는 표현을 써가며
'순종'이라고 여겨왔는데
그것은 틀린 행동이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것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것이었다.
정확히,
내 주위의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것은
여러 열심들을 들수 있겠지만
경험해본바 가장 효과가 있었던것은
바로 내 자신이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이었다.
내 헌신과 열심과 모든 에너지를 다 받쳤던 예전과
하나님을 교제의 대상으로 대하는 것,
우리에겐 그것이 필요하다.
사역을 감당해내고 헌신을 감당해내며 얻은 충족감은
소모되는 베터리와 같아서
평소엔 인지하지 못하겠으나
인생에 반드시 찾아오는 손님, '광야'의 계절을 맞이할때면
그 성능이 들어나는데
경험해본 바 상당히 빨리 방전되는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작용도 가끔 있는데
보상심리가 발동하여 하나님을 떠나버리는 불상사도 자주 발생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은혜가 오래 지속되지 않고 빨리 떨어지다 보니
끊임없이 은혜를 갈망하는 탓에
하나님의 이끄심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는것이다.
때문에 확실한 인생의 무언가가 터질때까지
사역의 중심지를 떠나지 못하고
한 장소에 오래 머무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충족감을 위한 것인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인지는 사실
분간하기가 너무 어렵다.
사역, 꿈, 모든것을 내려놓고 오직
존재대 존재로서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이
우리 크리스챤들에겐 꼭 필요하다.
나에게 충족감을 줄수 있는 주제들이 많지만
하나님을 얻는것만큼은 못할것이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연합을 꿈꾼다면
사역을 하든 알바를 하든 꿈을 위해 달려가든
하나님이 아닌 다른것에 취중하고 있는지
무엇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사역과 헌신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는지,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한 중보의 행위임을 알고 있어
어떤 상황이 와도 기쁨으로 감당해낼수 있는지,
하나님의 이끄심과 정반대의 선택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항상 깨어 점검해야 할것이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할것이다.
사역과 헌신은 열매일뿐
공허함을 사역과 헌신으로 체우는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진이 빠지게 만드니 조금은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의를 갖춰 조금의 대화를 나누기를
그 조금의 홀리한 파워가
나의 모든 영역을 뒤흔들어버렸다.
회복은 절대
사람의 열심에 달리지 않았다.
물론, 열심을 통해 비슷한 그림을 만들어낼수는 있겠지만,
그리고 인정도 받을수 있겠지만,
그 그림이 지워지는것은 사실상
시간문제일 뿐이다.
반면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질 회복은
사람이 만든 회복과 전혀 다른 선한 힘을 품고 있다.
우리는
진짜 열매를 맺는 법을 익혀야 된다.
씨앗을 심는 방법부터
싹이 나기까지 기다리는 법, 그리고
꽃이 피었을때 그것을 가꾸는 방법과
열매가 맺혔을시 거두는 방법도 우리는 배워야 한다.
때때로 씨앗이 썩거나, 혹은 싹이 썩거나, 또는 열매가 썩거나,
그럴때를 대처하는 법도
익혀야 할것이다.
근데 그것은 쉬운게 아니다.
인생은 쉽지 않다.
그래서 주권을 하나님께 모두 드려야 한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연습도 필요할것이다.
그것은 사역을 통해서 배울수 있는것들이 아니다.
사역과 헌신을 통해 배울수 있는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는 영역이다.
내 모든 영역을 주님께서 통치하실수 있도록
내 자신을 내줘야 한다.
사역을 감당해내는 친구들이 주위에 정말 많고,
감당하지를 못해 떨어져 나간 친구들도 굉장히 많다.
나같은 경우는 사역을 감당해내고 싶어도
심각해지는 상황들때문에 도퇴당한셈
내가 복음을 전해야 할 이들은
길거리의 사람들보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동생이었으며
어릴적 함께 했던 내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난 그러질 못했다.
그 모든것을 잃어버렸을때 기분은 정말 겪어본 사람이 아니라면 모를것이다.
복음을 길거리에서도 전해보고, 글로도 전해보고
여러 각도로 전했는데
그것이 내 마음의 충족을 위해서 한것이라면
그것은 건강하지 못하다.
사역에 취중된 신앙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복음이라도 전해야 할것 같고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잘 못하고 있는것 같은
뭔가 부족한 공허함이 내 안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복음 전한다고, 내가 사역을 감당한다고
채워질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이젠 확실하게 말할수 있다.
사랑해서 무너질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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