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갈렙
2015. 11. 22. 23:00
새벽기도는 정말이지 힘들다. 육체가 힘들다면 어쩔수 없이 새벽을 쉬어야겠지만 지친 상태가 아님에도 단순 피곤한것이라면 어떻게든 싸워 새벽을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을 향한 열심때문이 아니다. 나의 어떠한 열심도 그분의 나를 향한 열심을 갚을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새벽기도를 하는 이유는 그저 주님의 얼굴을 바라볼수 있는 시간이 이 시간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내 가진것중 가장 귀한게 시간인데, 가장 고귀한 시간이 이 새벽이기 때문이다.
항상 새벽에 일어나면 기도자리로 가서 몇분정도 가만히 앉아 있는다. 가만히 앉아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이 짧은 시간은 최고조로 졸린 시간이기때문에 어떤 은혜로운 생각도, 혹은 악한 경험도 결코 이 시간만큼은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는 간혹 내 졸음을 초월하고 나의 눈물샘을 터트린다. 내게 있어 새벽만큼 그분의 임재를 확실히 분별할수 있는 시간은 없을 것이다..
오늘은 갑자기 어릴적 단편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당시의 상황은 잠들기 일보직전인 내 머릿속에 아주 자세히 서술할수 있을정도로 뚜렷히 그려졌다. 그 당시의 일들은 졸려죽는 나를 급히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뜨거운 마음이 생겼다. 나는 너무 졸려 무릎꿇은 상태로 엎어져 있었는데 마치 꿈을 꾸는것 같았다. 방 한켠에서 울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하나님은 강력하게 원하고 계셨다. 현재의 나에게 몇일간 레마된 말씀을 들고 지금 떠오른 과거의 장면 곳곳으로 가기를 말이다. 내가 가서 그 외로운 어린 아이에게 속닥여줘야만 했다. 그 아이를 움직여 새로운 행동을 하게끔 해야 했다. 그것이 과거를 치유하고 뒤바꾸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거실에서 욕설을 퍼붓고 뺨을 때리는 과거의 어머니, 두려움에 떠는 아이. 그 아이에게 다가갔고 안아주며 레마된 말씀을 속닥이기를 "피투성이인 너의 모습을 내가 다 보고 있단다. 쓰러지지마 넌 혼자가 아니야. 꼭 살아있어줘야 되. 다시말하지만 꼭 살아있어줘." "일어나서 어머니를 안아주렴. 그녀에겐 품이 필요해." "사랑해" 등등 온갖 떠오르는 장면에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들을 그 어린아이의 귀에 담아주었다.
에스겔 16:6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과거가 변형되기 시작했다. 어둠의 씨앗이 뿌려진 그 당시의 하늘이 열려 쏟아지는 빛줄기들이 쓴뿌리들을 잘라내고 있었다. 어두움의 근원이 빛에 의해 산산히 조각나는 순간이었다. 단순한 상상이었을까. 그저 꿈이었을까. 내 상식으론 상상도 할수 없는 구조의 생각이 엎드려있는 내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어느세 졸음은 씻은듯 사라져있었다.
그분은 시간을 길 걷듯 걸으셨다. 하나님은 내가 매 맞을 때에도, 쫒겨날 때에도, 쌍욕을 퍼부어질때에도, 분노에 휩싸일때도, 고통중에 있을때에도 항상 나와 함께 계셨다. 항상 내 곁에서 말씀들을 속삭이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