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를 건너다.
1
얼마전 성남 전속에 관해 짧게 글을 올렸었는데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해드릴겸..그간 얻은 은혜들도 같이 나눠봅니다.
전속 신청을 하기 위해선 굉장히 복잡한 절차들과 단계들이 필요합니다. 합당한 이유와 충분한 결단이 없으면 진행 못할 절차들이죠. 그런데도 신청을 감행해낼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전속신청 전 주님께서 개인적으로 주시는 감동과 이끄심이 제 마음에 분명하게 와닿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나 확신이 컸냐면 '떨어졌다'라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 갈 준비를 할정도였죠. 뭔가 웃기긴한데 정말 한치도 요동치 않았습니다.
때마침 전속신청 관련되서 중대장님이 저를 호출하시더군요. 떨어진것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나눴는데 그제야 현실을 직시하고 급 황무룩해지더군요. 허허. 그렇게 대화는 막바지로 향했고 저를 호출한 주된 목적을 말하시더니 갑자기 6월 중순부터 'LCI(최종기회점검)' 부서로 전출 가보는게 어떻겠냐며 저의 의사를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LCI가 어떤 곳이냐. 잠시 그곳의 업무와 환경들을 대중에 알려진정도로만 말씀 드리자면요. 현재 제가 하는 일은 전투기가 비행할수 있게 준비시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쪽 부서의 업무는 저같은 사람들이 열심히 항공기를 준비시키면 LCI 부서는 이륙전 최종적으로 외부점검을 시작하는것이죠.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매일매일 감당해내야 되는 이쪽과 달리 소개받은 부서는 이미 전 장병들 사이에서는 평화가 가득한곳으로 소문난 곳입니다. 일의 강도가 상당히 낮기 때문에요. 그렇기에 왠만한 고참이 아니면 못가는 곳이기도 하구요.
그런 기회를 대뜸 쫄병하사인 저에게 주시겠다니.. 너무 큰 배려가 아닌가.. 성남 전속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도 요동치 않던 마음이 살짝 심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군대 특성상 하드코어와 같은 빡센 부서에서 누가 동료들을 냅두고 혼자 편한곳으로 가겠다고 누가 그렇게 결정할수 있을까요. 정이 있다면 그러지 못하거든요. 주위 선임들도 질투의 눈으로 '감히 너가?' 하는 투로 저를 바라보고 있고 나도 괜히 주눅 들어 '과연 내가?' 로 답하며 주님께 다시 기도드릴 뿐이었습니다.
2
어느날 작업도중 목이 말라 정수기에서 물 한컵 떠서 마시고 있었는데 대뜸 마음에 감동이 일더니 눈물이 터지더군요.. 남들이 보면 굉장한 우울함의 눈물로 오인할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무도 못봤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우울함의 눈물이 아니라 주님의 다가오심에 반응하는 눈물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갑자기 지난 2년간의 시간들을 머릿속에 싸사삭 상기시켜 주시는겁니다. 그간의 경험들은 세상의 사람들조차 '재앙'이라고 부르며 안쓰러움을 표현해줄 정도의 악재였고, 개인적인 감정 추수릴 여유조차 없이 저는 군인으로서 맡겨진 업무들을 처리해야만 했었습니다. 제가 저를 봐도 구제불능처럼 보일때가 많았습니다.
정수기에서 대뜸 눈물을 흘린 이유는 바로 그런 비참한 상황에서 저를 구원하시려 애쓰는 주님의 형상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구요.. 주님께서 저에게 성남전속의 신청 기회를 주신 이유가 바로 지금을 위해 예비 되었던 하나의 과정었다는 사실이 감동이 되어 저를 위로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 홍해를 가르실때 백성이라면 당연히 건너야 하는것이 맞듯, 제가 이 기회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여러 눈치와 갈등들, 그리고 기도들 끝에 눈 질끔 감고 전출을 가기로 콜을 하게 됬습니다. 6월 중순부터 업무를 해나갈 예정입니다. 많은것들이 여유로워지고 그간 부셔졌던것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다시 새울수 있게 되겠죠..
참 신기한것이 콜을 하자마자 몇 시간 뒤, 여러 비행단에서 하사들을 모집한다는 문서가 날라왔다는 것입니다. 마치 병거와 마차처럼 뒤늦게 저에게 달려드는 느낌이랄까. 성남전속에 떨어졌으니 그나마 가까운 곳으로 가면 어떻겠냐는 분위기가 잠시 형성되었지만 저는 이미 홍해를 다 건넌 뒤였습니다.
3
콜을 하는 순간 신기한것을 경험하게 됬는데, 제가 지금의 시기를 광야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쓴 뿌리들과 제 영적인 연약함과 파탄난 환경들, 온전치 못한 내 자신이 불러들이는 온갖 악한 상황들 등등의 여러 환경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그 자리에서 멈추는것이었어요. 이번주 매일매일 그것을 바라보며 놀라운 체험들을 했구요. 하나님을 머리로만 알다 몸으로 체득되면서 그것이 지식이 되어지는것을 계속해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매번 비참한 환경을 보면서 무너지고 좌절하고 계속 일어서는것을 반복했던 일상, 마치 광야의 광풍이 모래폭풍을 동반하는듯한 느낌의 지난 2년, 더는 전진 하지 못한체 그 자리에서 광풍이 멈추기를 기다린지 2년이었는데 어느센가 사방이 고요해진 느낌에 눈을 떠보니 풀들이 자란 평야에 제가 서있더군요.
4
성남 전속 신청할때 저는 '성남 전속'만을 바라보았는데 주님의 시선은 이미 저의 시선을 초월하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가정이 파탄날때 저는 사탄의 공격이라며 쇼를 벌였는데 고난을 주신 이유는 주님의 다시 세우심 때문이었고, 등등 이미 주님은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가치와 의도를 가지고 계신것 이었습니다.
인생이 내 뜻데로 되지 않는다고 얼마나 답답해 했었고 상황상황마다 흔들리는지, 얼마나 내가 이분법적인 이 세상의 페러다임(맘몬, 바알, 사울주의, 인본주의 등등의 비슷한것들)에 휘둘리고 붙잡혀 있었는지를 정확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것들을 깊이 회개하게 되서 너무 기쁘다는거.. 이거 나누고 싶었구요.
내가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할건지보다 사실 더 중요한것은 내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얼마나 더 많이 닮아가는가이겠죠. 아무튼 이 글이 누군가에겐 은혜가 됬으면 좋겠네요. 앞으로도 더 하나님 많이 나누었으면 좋겠구요. Last Chance Inspection(최종 기회 점검) 이라.. 이륙의 순간이 바짝 다가온걸까요. 앞으로를 기대해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