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갈렙 2015. 2. 22. 20:27

답답했다. 너무 답답해서 부르짖었다.

나는 왜 주님과 동행하는 영향력있는 그들처럼 살아갈수 없는것인지

난 분명 이미 이루어졌음을 믿으며 그것을 선포하고

암울한 현실을 부정하려 열심히 살아가는데 

왜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 답답함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너무너무 답답했다.


물론 이 과정은 내가 성숙할수 있는 단계이고 

더 영화롭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 정말로 굳게 믿고 있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까놓고 나는 현재 

많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인내력의 한계


모든것이 풍요롭고 부족함 없는것이 사실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무언가 영혼이 목말라 하는것 같은 느낌이다.

어떤 은혜를 느끼든, 어떤 귀한것을 깨닫든 

이곳에서 느껴야 하는것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라고 정의해버리는 세상속에 있다는 사실이

누구하나 외쳐주지 않는 이 곳이 너무 답답했다.


어떤것을 깨닫든, 어떤것을 꿈꾸든 

내가 가는 길은 그것과 전혀 상관 없다라는것을 

보란듯이 증명해내보이는 이 현실이

답답하고 또 한편으론 무서워졌다.


그래서 너무 답답해서 

하나님께 소리쳤다. 목이 다 쉬도록 너무하는거 아니냐면서 소리리치는데 

신기하게도 분명 울어야 되는 상황이나 슬픈 감정이 없는데도, 그냥

빡이 이만큼 차올라서 소리치는것인데도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리는것이 느껴졌다. 땀인줄 알았는데 

눈물이었다.


그동안 영광스러운 주님, 영화로운 주님, 행복하고, 승리하신 주님만을 바라보며, 선포하며

믿으며, 이루어졌다고, 이루어진척 그것에 푹 빠져 살려고 노력했는데,, 그럴수가 없었다.

그것은 무리였다.. 나는 악했고 약했으며 이기적이고 완왁했다.


나를 일으켜 줄수 있는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그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였고,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생명 던지신것에 대한 감사였다. 

그랬다.

내가 못남에도 다가오는 하루를 담대하게 맞이할수 있는 이유와

더러운 내 모습임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수 있는 이유는 바로 

주님의 십자가때문이라는 사실이

내 답답함을 풀어냈다. 확 풀어내렸다.


큰것을 잊고 살았던것 같다.

그리고 다시 알아차려서 정말로 다행이다. 


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24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139: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