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 : 임관 후 부사관 학교에 들어가다
허리가 끊어져 있고, 천식이 있는 저로서는 훈련을 잘 감당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런만큼 기적이 많이 따랐습니다. 훈련받다 육군 병사가 사망한 사건이 터졌고 그 뒤로 모든 훈련의 강도가 낮아졌습니다. 100km를 걸어야 되는 행군을 25km만 했고 1주일 유격 훈련 해야 될것을 3일만 하는 둥, 전체적인 난이도과 확 낮아져 무사히 훈련을 치뤄 낼 수 있었습니다.
3개월의 훈련기간 동안 제가 속해있던 1소대 60명 전원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훈련 당시에 기수(깃발 드는 사람)였는데 동기 후보생들은 저를 기수그리스도로 불러주었습니다.
그래도 훈련은 훈련이었기에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힘들때마다 예수님과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저는 우리 가정을 지켜달라며 하나님께 틈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부모님의 편지를 받는 동기생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마침 그렇게 생각하던 중에 어머니께 편지가 왔습니다. 그냥 편지일 뿐인데 보자마자 눈물이 나왔습니다. 여전히 동생은 말썽이라는 소식과 어머니 몸이 점점 더 이상해져 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도 힘내라는 내용과 자랑스럽다는 내용, 보고싶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늘 내 자신에게 최면 걸고 바래왔던것처럼 임관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임관 전 저는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됬습니다.
"어이구 윤형아 몇일날 임관식 하니"
"음 9월 4일쯤"
"거기 어떻게 가는지 좀 말해줘라"
"에이 엄마 여기가 어디라고 와 오지마
끝나고 내가 성남 갈게"
"그러지 말고 얼른 말해봐"
"응 야탑 종합버스 터미널에서..."
임관식에는 어머니와 저의 지인 유진우 형님이 와주셨습니다. 유진우 형님께서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와준 것입니다. 어머니는 동생도 왔으면 하나님이 더 좋아했을텐데..라며 아쉬워했지만 굉장히 기뻐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은 많이 부어계셨습니다. 심장의 상태가 더 안좋아지신듯 했습니다. 그러나 저를 쓰다듬어주셨고 기특해하셨습니다. 저도 앞으로가 기대 됬고 그 날은 제 인생 최고로 굉장히 기쁜 날이었습니다!
임관 후 저는 부사관 학교에 입학을 했고 전문적인 기술들을 배워 나가며 제 앞으로 있을 부사관으로서의 삶들에 많은 기대를 했었습니다. 가정은 많이 무너져 있었지만 나로부터 다시 시작될것이라고 믿고 돌파해 나갔습니다.
이젠 핸드폰도 맘껏 쓸 수 있었고 그토록 원하던 어머니와 연락도 가능해졌고 지인들에게도 드디어 소식을 전해 줄 수 있었습니다. 지인들과 거리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저는 행복했습니다.
교회에서 우연히 전대장님(대령)을 뵙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새벽기도를 권유하셨지만 저는 나가고 싶어도 아침 점호때문에 나갈 수가 없다 대답했는데 아침 점호를 없에 줄 태니 새벽기도에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새벽기도도 가게 되고 저의 이 기간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는것이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추석 이틀 전 제가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번 추석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남들은 다 가족들 만나러 올라가지만 저는 이곳에 남아서 기도를 더 진지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흔쾌히 허락해주셨습니다. 단단히 마음먹고 기도 열심히 하고 밥 아구처럼 먹으라며 응원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싶었습니다. 내 인생 80년밖에 안되는데 더 못드려서 죄송하다며 너무 충만했었습니다. 부사관 학교의 교관님들은 저를 위해 특별히 숙소도 잡아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