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스펙이 필요한지. 얼마나 많은 계획들이 필요하고, 될까 안될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가득한지.주님의 나라보다는 자신의 확신감을 위한 헌신이, 자신의 충족감, 자신의 행복감을 위한 헌신이 얼마나 흥행하고 있는지.마치 우리가 이 세상의 주인인것처럼 말이다. 인생의 주권이 우리에게 있는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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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연중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영역을 하나님께로부터 빼앗았는가. 하나님이야말로 만물의 주인이시거늘 우리는 어째서 뻔뻔히 주인행세를 하고있는가. 바알과 아세라, 맘몬..등등 대놓고 주님을 모욕하는 사상들이 판을 치고있는 이때 왜 내 마음속엔 10살 꼬맹이 다윗이 블레셋을 향해 품었던 거룩한 분노와 애통함이 생기지 않는가. 왜 난 아직까지도 현실의 문제 따위에 불안해하며 주님의 얼굴을 평안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 그보다 주님은 내게 있어 정신적인 '사상'인가 실존하는 '실체' 인가. 정의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정의하든 그에 맞게 주님은 대답해 주실 것이다. 현실의 페러다임과 하늘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기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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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적은 골리앗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다윗의 진짜 적은 주위에서 속닥이는, '그의 키는 여섯규빗 하고 한뼘 반이며, 어려서부터 용사였기에 어린 너가 이길수 없는 두려운 존재이다' 라고 외쳐대는 인본주의적 사상이요, 기존의 페러다임과 현실적인 사고방식들이었다.
겉모습만 짱짱한 골리앗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과 사울은 겁을 먹었으나 다윗에겐 애초에 적수가 못되었다. 놀랍게도 다윗은 전쟁무기가 아닌 돌맹이를 손에 쥐었으며 설령 돌맹이가 아니라 풀때기를 들었더라도 다윗에게 있어서 골리앗은 약하디 약한 존재일뿐이었다. 오히려 그를 무너뜨린것은 내면에 있는 연약함들이었다.
그렇다. 나에게 사랑으로 임재하시고 하늘의 권능을 풀어주시는 주님의 행동을 제한하는것은 나의 환경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나의 내면에 자리잡아버린
온갖 인간적인 사상들에 있다. 겉모습을 치장하기 위한 그 어떤 스펙과 능력들보다 주님과의 동행과 그럼으로 얻어지는 체험들속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페러다임, 그리고 새로운 사고방식들이 내겐 너무나도 필요하다.
나를 살아가게 해주었던 이전의 사상들은 내 성을 쌓기엔 적합할지 모르지만 주님의 나라를 쌓지는 못한다. 스펙으로 밀어붙이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고 겉모습으로 인정받는 것만큼 불쾌한게 없다.
축복한다. 그것만이 신앙의 목적이며 인간란 생명의 존재 이유이다.
더 깊이,더 묵직하게 하나님의 사랑이 다시 한번 내 영혼에 인쳐지기를, 현실을 두려워하고 겉모습만 보게 만드는 내부의 견고한 진들이 부셔지기를 아멘.
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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